누가 근로자인가? 재판은 계속된다[LAW Inside]

입력 2022-03-31 05:50  

최근 서울고등법원에서는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 아나운서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며 정규직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방송사에 의해 배정된 편성표에 따라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았고 정규직 아나운서들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으며 종속적 관계에 있는 아나운서 직원이 아니라면 하지 않을 업무도 상당 부분 수행해 왔다는 이유입니다. 한편에서는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가 올해 회원 1만명 모집과 운영비 모금·공제사업 확대를 추진한다는 소식, 개인사업자 형태로 위탁계약을 했더라도 실질이 근로자라면 산재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판결이 잇따른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또 민주노총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도록 촉구했고, 배달라이더들은 매달 산재보험료를 내도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뉴스도 들려옵니다. 지난해 말엔 국회에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이 많은 소식들의 중심엔 "누가 근로자인가"라는 문제 의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판단 기준 '복잡'

헌법은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죠.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에서도 근로자를 정의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사람이 과연 근로자인지"를 묻는 지리한 재판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근로자에게는 해고 보호, 최저임금, 주 최대 52시간 근무 및 연장근로수당 보호, 유급휴가, 근로조건 저하금지, 퇴직금 등이 부여되고 노조활동의 권리가 보장되며, 산재보험·고용보험이 따라붙습니다. 이것들을 다수의 형사처벌 조항과 노동위원회·근로감독관 조직으로 떠받쳐 주지만, 근로자가 아닌 순간 이중 거의 대부분이 사라지고 마니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재판을 할 만도 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해고 보호와 퇴직금으로 대표되는 핵심적인 보호영역인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① 업무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②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③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④ 노무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⑤ 보수의 성격이 근로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⑥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⑦ 근로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 ⑧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요소들을 종합 검토해야 하니 재판을 하더라도 결과를 알기 어려운 것인데, 이와 같은 기준 자체는 수십 년간 변화가 없습니다.

한편 대법원은 2018년 학습지교사가 위와 같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는 해당되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보다 넓은 범위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개념을 설정해 이중구조화했습니다.

그 판단기준은 ① 노무제공자의 소득이 특정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고 있는지, ② 노무를 제공받는 특정사업자가 보수를 비롯해 노무제공자와 체결하는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지, ③ 노무제공자가 특정사업자의 사업수행에 필수적인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특정사업자의 사업을 통해서 시장에 접근하는지, ④ 노무제공자와 특정사업자의 법률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지속적·전속적인지, ⑤ 사용자와 노무제공자 사이에 어느정도 지휘·감독관계가 존재하는지, ⑥ 노무제공자가 특정사업자로부터 받는 임금·급료 등 수입이 노무제공의 대가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재판을 해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비록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는 아니더라도 경제적인 종속상태에 있는 노무제공자들로서 자신들의 노동조건 향상을 집단적 교섭의 방법을 통해서 도모하기에 적합한지 여부에 주안점을 둔 판단기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당한 지휘·감독' 판단 기준도 '모호'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과 산업안전 영역은 비교적 독자적으로 법을 개정함으로써 그 적용대상을 점차 확대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산재보험법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14종을 정하고 있고(올해 7월부터 15개로 확대시행), 산업안전보건법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안전조치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고용보험법은 작년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및 예술인에 대하여, 올해부터는 플랫폼종사자에 대해서도 그 적용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산재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전속성 요건과 한정열거방식 때문에 적용범위에 들어오지 않는 플랫폼 종사자 등이 아직 많습니다.

이렇게 보면, 근로자의 범위가 중층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인 핵심영역인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이 오랫동안 요지부동인 것 같습니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플랫폼 종사자 법률안도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근로자에 포섭되지 않는 플랫폼 종사자들에게도 일정한 보호를 부여하자는 취지입니다(다만 법률안 중에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에 대한 입증책임을 사업자에게 지우는 조항이 있는데 캘리포니아주 법원의 이른바 'ABC테스트' 등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판단요소들은 여러가지인데 그 핵심은 '상당한 지휘·감독' 또는 '인적종속성'이라고 이해되고 있습니다. 생소한 단어인 '인적종속성'이란 독일민법의 표현(personliche Abhangigkeit)으로 '타자 결정성'을 말합니다. 경제적 종속성과는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상장회사의 등기임원들도 경제적으로는 회사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사회적 보호 필요성과도 구별됩니다. 요즘 근로자 중에는 억대 연봉자가 수두룩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핵심일까요.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자주적 처분가능성을 포기했다는 점이라고 한다면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인격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정법의 기본사상이 꽤 심오하니 규율의 핵심영역에 관한 진입요건을 바꾸기가 쉽지 않고, 그런 이유로 앞으로도 근로자성을 둘러싼 재판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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